오늘 모실 분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 경(敬) — 동방의 주자라 불린 조선 성리학의 큰 스승

퇴계 이황 초상

退溪 李滉 · 1501 ~ 1570

오늘 저자와의 대화에 퇴계 이황을 모셨습니다. 반갑게 맞아 주세요. 벼슬을 스무 번 넘게 사양하고 고향 시냇가로 물러나(退溪) '마음 다스리는 공부'에 평생을 바친 분입니다. 일곱 개의 방을 따라 그가 살았던 사화(士禍)의 시대, 26세 연하의 젊은 학자 기대승과 8년간 주고받은 편지 논쟁, 그리고 17세 어린 임금에게 바친 『성학십도』까지 차근차근 둘러보며 그를 알아가 보세요.

여기서부터 일곱 개의 방이 이어집니다. 천천히 걸어 내려가면, 마지막 방에서 그분이 당신에게 묻습니다.

살던 시대

네 번의 사화(士禍) 속에서 — 학문으로 피한 칼바람

조선 중기 · 중종–선조 (16세기)

퇴계의 생애(1501–1570)는 조선 중종·인종·명종·선조 4대에 걸쳤습니다. 이 시기 조선은 4대 사화(무오·갑자·기묘·을사)로 새로 등장한 사림(士林)과 기득권 훈구(勳舊)가 격렬하게 충돌하던 시대였습니다. 외척이 권력을 휘두르고, 바른말 하는 선비가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는 일이 거듭됐습니다.

퇴계 자신이 그 칼바람을 직접 겪었습니다. 1545년 을사사화 때 한때 삭탈관직되었고, 형 이해(李瀣)는 정쟁에 연루되어 유배 가던 길에 병으로 죽었습니다. 그가 평생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으로 물러나려 했던 데에는, 이 시대의 위태로움에 대한 깊은 환멸이 있었습니다.

사상사적으로는 고려 말 들어온 주자학(성리학)이 안향·정몽주·권근을 거쳐 비로소 본격적으로 꽃피던 때였습니다. 1543년 『주자대전(朱子大全)』이 조선에서 간행되면서 연구 기반이 마련됐고, 퇴계가 바로 그 책을 입수해 깊이 파고들며 조선 성리학을 한 단계 끌어올렸습니다. 또 그가 풍기군수 시절 건의해 받아낸 소수서원 사액(賜額)은 이후 서원 시대를 여는 첫 단추가 되었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던 사람들

  • 율곡 이이 (栗谷 李珥, 1536–1584)35세 연하 · 기호학파 종주 — 1558년 도산을 직접 방문, 훗날 퇴계의 학설을 비판하며 영남–기호 두 학파가 갈림
  • 남명 조식 (南冥 曺植, 1501–1572)동갑 · 경상우도의 종주 — 평생 편지로만 교류하고 직접 만난 적은 없는 라이벌
  • 고봉 기대승 (高峯 奇大升, 1527–1572)26세 연하 — 8년에 걸친 사단칠정(四端七情) 논변의 상대
  • 회재 이언적 (晦齋 李彦迪, 1491–1553)10세 연상 선배 — 그의 「태극문변」에 깊이 감동, 사상의 한 출발점

살아오신 길

온계리에서 도산서원까지 — 물러남으로 완성한 삶

이황(李滉)은 1501년 음력 11월 25일(양력 1502년 1월 13일), 경상도 예안현 온계리 — 현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 의 노송정(老松亭) 종택에서 태어났습니다. 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퇴도(退陶)·도수(陶叟). 시호는 문순(文純). 7남 1녀의 막내였습니다.

아버지 이식(李埴)이 퇴계 출생 7개월 만에 마흔 살로 세상을 떠나, 그는 홀어머니 춘천 박씨 밑에서 자랐습니다. 율곡에게 신사임당이 있었다면 퇴계에게는 이 어머니가 있었다고 전합니다. 정식 스승은 12세에 『논어』를 가르쳐 준 숙부 송재 이우(李堣) 한 분뿐, 이후로는 대부분 독학으로 학문을 닦았습니다. 20세 무렵 『주역』에 몰두하다 건강을 해쳐 평생 잔병치레를 했습니다.

가정사는 불행이 많았습니다. 첫 부인 허씨는 28세에 둘째 아들을 낳고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고, 정신적 어려움이 있던 둘째 부인 권씨도 함께한 16년 뒤 난산으로 잃었습니다. 퇴계는 모자란 권씨를 끝까지 따뜻이 감쌌고, 첩의 아들도 호적에 올려 적서(嫡庶) 차별을 두지 못하게 했으며, 신분 낮은 대장장이 배순(裵純)까지 제자로 받아들였습니다. '차별 없는 인애'가 그의 사람됨이었습니다.

1534년(34세) 문과에 급제해 관직에 나아갔지만,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단어는 '나아감'이 아니라 '물러남(退)'이었습니다. 1543년 이후 그가 관직을 사양하거나 임관에 응하지 않은 것이 20여 회에 이른다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적습니다. 호 '퇴계'는 '물러나 시냇가에 머문다(退居溪上)'는 뜻 그대로였습니다.

을사사화 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토계(兎溪)에 양진암을, 이어 도산(陶山)에 서당을 세워 후학을 길렀습니다. 1568년(68세) 17세의 어린 선조에게 「무진육조소」와 『성학십도』를 바친 것이 마지막 큰 봉사였고, 1570년 음력 12월 8일(양력 1571년 1월 13일) 도산에서 향년 70세로 별세했습니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고, 1610년 문묘(文廟)에 종사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한평생

  1. 1501

    0

    출생 — 예안현 온계리

    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노송정 종택. 출생 7개월 만에 부친 별세.

  2. 1534

    34

    문과 급제 · 출사

    승문원 권지부정자로 관직 시작. 이후 승진을 거듭함.

  3. 1543

    43

    『주자대전』 입수

    오래 수소문해 얻은 주자의 글. 이후 성리학에 본격 침잠하는 분기점.

  4. 1545

    45

    을사사화 — 환멸과 은거의 시작

    삭탈관직 후 복관. 형 이해의 화 등으로 정치에 환멸, 고향 퇴계로 물러남.

  5. 1549

    49

    소수서원 사액 실현

    풍기군수로서 백운동서원의 사액을 청해 받아냄 — 조선 사액 서원의 첫 선례.

  6. 1559

    59

    기대승과 사단칠정 논변 시작

    26세 연하 고봉에게 보낸 편지로 발단. 8년간 왕복 논변으로 이어짐.

  7. 1561

    61

    도산서당 완성 · 『주자서절요』 간행

    도산에 서당을 짓고 강학. 주자 편지를 정선한 『주자서절요』가 간행됨.

  8. 1568

    68

    「무진육조소」·『성학십도』 진상

    17세 선조에게 7,400여 자의 상소와 10개 그림의 성학십도를 바침.

  9. 1570

    70

    별세 — 도산

    양력 1571년 1월 13일. 사후 영의정 추증, 1610년 문묘 종사.

사건 ①: 1545년, 을사사화 — 칼바람 속의 결심

명종 즉위 직후 외척 권력 다툼 속에 일어난 을사사화. 퇴계는 역신과 한 무리로 몰려 삭탈관직되었다가 곧 복관됐고, 형 이해는 정쟁에 휘말려 유배 길에 죽었습니다. 이 환란을 겪으며 그는 권력의 한복판이 아니라 학문과 수양 속에서 사람다움을 지키겠다는 '물러남'의 길을 택합니다.

사건 ②: 1559–1566년, 사단칠정 8년 논변 — 나이를 잊은 편지

59세의 노대가 퇴계가 33세의 젊은 학자 기대승과 인간의 마음을 두고 8년간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퇴계는 자기 나이나 지위를 내세우지 않고 오직 학문 내용만으로 토론했으며, 비판을 받아들여 자신의 설을 수정하기까지 했습니다. 권위가 아니라 진리 앞에 겸손했던 이 논변은 한국 사상사 최고의 지적 대화로 꼽힙니다.

사건 ③: 1568년, 『성학십도』 진상 — 평생을 한 장의 그림으로

68세의 퇴계는 막 즉위한 17세 선조에게 성인(聖人)이 되는 학문의 핵심을 10개의 그림으로 압축해 바쳤습니다. '성학에는 커다란 단서가 있고, 심법에는 지극한 요령이 있다'는 첫 문장처럼, 평생의 공부를 어린 임금이 늘 보고 마음에 새기도록 병풍과 책으로 만들어 올린 것입니다.

퇴계 이황 동상

퇴계 이황을 기리는 동상.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 PD

퇴계 이황의 친필 편지

퇴계가 남긴 친필 편지. 그는 제자·벗들과 편지로 오래 토론했습니다.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 PD

핵심 생각

이기(理氣)와 사단칠정 · 그리고 경(敬)

퇴계 사상의 두 기둥은 '이기론(理氣論)''경(敬) 사상'입니다. 그는 주희의 이기이원론을 받아들이되, 만물의 본질·원리인 이(理)가 단순한 법칙이 아니라 스스로 발현하는 능동성을 지닌다고 보아 이를 강조했습니다(주리설). 이 관점은 인간의 마음을 둘로 나눠 보는 데로 이어집니다 — 순수한 도덕 감정인 사단(四端)은 이가 발한 것, 일반 감정인 칠정(七情)은 기가 발한 것. 그러나 그의 학문이 끝내 향한 곳은 형이상학이 아니라 마음 다스리기였습니다. '경(敬)' — 한순간도 마음을 흩뜨리지 않고 또렷이 깨어 있는 그 공부가 그의 모든 사상을 하나로 꿰는 핵심입니다.

어려운 한자말이 나와도 겁내지 마세요. 뜻을 먼저 적어 두었습니다. 뜻만 알아도 충분합니다.

경 (깨어 있는 마음)

· gyeong

한순간도 마음을 흩뜨리지 않고 또렷이 깨어, 자신을 삼가고 공경하는 마음가짐. 퇴계가 평생의 수양을 하나로 통합한 핵심 원리로, 서구 학계는 'reverence'·'mindfulness'로 옮깁니다.

明天理者敬而已 — 하늘의 이치를 밝히는 데는 경(敬)뿐이다 (정호의 말, 퇴계가 강조)

이기론 (이치와 기운)

理氣

만물은 본질·원리인 이(理)와 질료·에너지인 기(氣)로 이루어진다는 성리학의 틀. 퇴계는 이(理)의 능동성·우위를 강조하는 주리설(主理說)로 발전시켰습니다.

사단칠정 (네 실마리와 일곱 감정)

四端七情

측은·수오·사양·시비의 순수한 도덕 감정(사단)과 희·노·애·구·애·오·욕의 일반 감정(칠정). 퇴계는 사단과 칠정의 근원(所從來)이 다르다고 보았습니다.

四端理發而氣隨之, 七情氣發而理乘之 — 사단은 이가 발하고 기가 따르며, 칠정은 기가 발하고 이가 탄다

이발기발 (이기호발설)

理發氣發

이(理)도 발(發)할 수 있다는 퇴계 특유의 주장. 율곡은 '이는 발하지 않고 발하는 것은 오직 기'라며 반박해(기발이승일도설), 영남·기호 두 학파가 여기서 갈렸습니다.

거경궁리 (마음을 다잡고 이치를 궁구함)

居敬窮理

경(敬)으로 마음을 다잡는 '거경'과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드는 '궁리'를 수레의 두 바퀴처럼 함께 닦는 공부법. 안과 밖, 마음과 앎을 하나로 잇습니다.

심통성정 (마음이 성과 정을 거느림)

心統性情

고요해 움직이지 않을 때가 성(性, 마음의 본체), 느껴서 통할 때가 정(情, 마음의 작용)이며, 그 둘을 통섭하는 것이 마음(心)이라는 가르침. 『성학십도』 제6도의 핵심.

聖學有大端, 心法有至要 — 성학에는 커다란 단서가 있고, 심법에는 지극한 요령이 있다

남기신 글

한 장의 그림에 담은 평생 — 『성학십도』와 그 곁의 책들

퇴계의 글은 화려한 저술이라기보다 마음 공부의 안내서에 가깝습니다. 그 정점이 17세 선조에게 바친 『성학십도』 — 성인이 되는 학문을 단 10개의 그림으로 압축한 책입니다. 그 곁에는 제자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가려 묶은 『자성록』, 주자의 편지를 정선한 『주자서절요』, 그리고 자연과 학문을 노래한 한글 시조 『도산십이곡』이 있습니다. 그의 모든 글은 한국고전번역원 『퇴계집』(한국문집총간 29–31집)에 전합니다.

성학십도

1568년 12월 (선조 1년) 진상

聖學十圖

성인이 되는 학문(聖學)을 10개의 그림과 해설로 압축한 퇴계 사상의 결정판. 태극도·서명도·심통성정도 등으로 구성되며, 어린 임금이 늘 보고 마음에 새기도록 병풍과 책으로 만들어 바쳤습니다. 조선왕조 전체에서 가장 많이 복각된 텍스트의 하나로 꼽힙니다. 영역본 Michael Kalton, *To Become a Sage*(Columbia UP, 1988)가 대표적.

자성록

1558년 단오 서(序)

自省錄

제자·벗과 주고받은 편지 22편을 손수 가려 엮은 책. '옛사람의 말과 행적에 비추어 스스로 반성하기 위해' 모았다는 그 이름처럼, 마음의 병을 다스리고 뜻을 세우는 법을 묻고 답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메타인지·저널링과 닮은꼴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주자서절요

1556년 편찬 → 1561년 간행

朱子書節要

방대한 『주자대전』 가운데 주희의 편지를 가려 뽑아 엮은 책. '주자대전의 서간에는 그의 학문과 사상이 함축되어 있다'는 판단에서 핵심만 추렸습니다. 훗날 일본에 전해져 에도 주자학에 직접 영향을 주었습니다.

도산십이곡

1565년 (명종 20)

陶山十二曲

도산에서 지은 12수의 한글 시조. 앞 6곡은 자연 속 심정을 노래한 언지(言志), 뒤 6곡은 학문 수양을 노래한 언학(言學)입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로 시작하는 첫 수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다시, 읽다

이분이 직접 쓴 문장입니다. 소리 내어 한 번 읽어 보세요 — 이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聖學有大端, 心法有至要.
성학(聖學)에는 커다란 단서가 있고, 심법(心法)에는 지극한 요령이 있다.
— 「『성학십도』 「진성학십도차」
四端理發而氣隨之, 七情氣發而理乘之.
사단(四端)은 이(理)가 발하고 기(氣)가 따르며, 칠정(七情)은 기가 발하고 이가 탄다.
— 「『성학십도』 사단칠정 해석
明天理者敬而已.
하늘의 이치를 밝히는 길은 경(敬), 오직 그것뿐이다.
— 「정호의 말 — 퇴계가 경 사상에서 거듭 강조
主一無適.
마음을 하나에 모아 다른 데로 흩어지지 않게 한다.
— 「정이의 경(敬) 정의 — 퇴계가 계승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 초야우생(草野愚生)이 이렇다 어떠하리 / 하물며 천석고황(泉石膏肓)을 고쳐 무엇 하료.
— 「『도산십이곡』 전6곡 기일
『퇴계문집』 표지

퇴계의 글을 모은 『퇴계집(退溪集)』.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 PD

오늘 우리에게

AI 시대 — 흩어지는 마음에게 묻는 '경(敬)'

퇴계의 사상은 화면과 알림에 끊임없이 마음을 빼앗기는 2026년 청소년에게 뜻밖에 가까이 닿습니다. 핵심은 경(敬) — 한순간도 마음을 흩뜨리지 않고 또렷이 깨어 있는 공부입니다. 서구 학계(Kalton·Chung 등)는 이를 현대 '마음챙김(mindfulness)'의 동아시아적 원형으로 재해석합니다.

경 (敬) · 주일무적

디지털 산만함, 멀티태스킹, 무한 스크롤

'마음을 하나에 모아 흩어지지 않게 한다'는 주일무적은, 알림과 영상에 빼앗긴 주의력을 되찾는 집중·몰입(flow)의 옛 이름입니다.

자성 (自省) · 『자성록』

메타인지, 저널링, 자기성찰

옛사람에 비추어 스스로를 돌아보며 쓴 편지들 — 오늘의 '성찰 글쓰기'와 메타인지 훈련의 동아시아적 모델입니다.

거경궁리 (居敬窮理)

자기주도학습, 평생학습

마음을 다잡는 '거경'과 이치를 파고드는 '궁리'를 함께 닦는 법은,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왜·어떻게'를 스스로 묻는 학습 태도와 통합니다.

사단칠정 · 이기 구분

AI 윤리의 규범과 데이터

순선한 이(理)와 선악이 섞인 기(氣)의 구분은, AI 윤리에서 '마땅히 그래야 함(규범)'과 '실제 데이터(경험)'를 가르는 층위 구분과 견주어 볼 수 있습니다.

차별 없는 인애

디지털 포용, 공정성

신분 낮은 대장장이도 제자로 받고 적서 차별을 없앤 퇴계의 태도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포용의 가치를 비춥니다.

자연에의 외경 (敬)

기후위기, 생태윤리

자연을 정복 대상이 아니라 공경(敬)의 대상으로 본 퇴계의 시선은, 현대 생태윤리의 한 자원으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Chung).

퇴계의 핵심 명제인 '이발(理發, 이도 발한다)'이 주희 본래의 뜻에 충실한지는 학계 미합의 쟁점입니다. 율곡학파는 이(理)는 발하지 않는다며 비판했습니다. 또 영남학파(주리)와 기호학파(주기)의 대립을 한쪽 우열로 단정하거나, 남명 조식과의 라이벌 관계를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한편 퇴계가 다수의 노비를 보유한 기록이 있어, 16세기 신분제 사회의 인물임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정확한 수치는 학계 미합의).

이제 당신 차례

이제, 퇴계와 직접 만나보세요

당신은 일곱 개의 방을 모두 둘러보았습니다. 퇴계는 벼슬을 스무 번 넘게 사양하고 시냇가로 물러나, 마음 하나 다스리는 공부에 평생을 바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물러남은 도피가 아니라, 가장 깊은 데서 사람다움을 지키는 길이었습니다. '바로 대화하기'에서 그가 당신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고 오세요

그대로 옮겨 적어도 됩니다.

  • 휴대폰 알림 때문에 도무지 집중이 안 돼요. 경(敬)으로 마음을 어떻게 모으나요?
  • 26세나 어린 사람과 8년이나 편지로 토론하셨다는데, 비판을 받아들이는 게 어떻게 가능했나요?
  • 왜 그렇게 여러 번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나셨나요? 물러나는 게 지는 건 아닌가요?
  •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은 뭐가 다른가요? 제 감정도 둘로 나눌 수 있나요?
  • 율곡과는 무엇을 두고 다르게 생각하셨나요?
  • 성인이 되는 공부를 그림 열 장으로 정리하셨다는데, 그 핵심은 무엇인가요?

선생님 · 담당자를 위한 안내

교과 어디에서 만나나요

한국 윤리사상(성리학)의 정점 인물 — 사단칠정·이기호발설·경(敬)이 수능 윤리와 사상의 최빈출 주제이며, 고1 한국사에서는 이이와 함께 조선 성리학으로 등장합니다.

퇴계 이황 교과 연계표
과목학년단원비중
수능 윤리와 사상고2-3한국 성리학 — 사단칠정·이기호발설최빈출 ⭐⭐⭐
고1 윤리와 사상고1한국 윤리사상 — 성리학(경·성학십도)최빈출
고1 한국사고1조선 성리학(이황·이이)빈출
초5-6 사회/도덕초5-6옛사람들의 삶 / 인물 소개가끔
중1 도덕(자유학기)중1한국 윤리사상 부분 소개가끔

율곡 이이와 짝을 이루는 '주리 vs 주기 / 이기호발 vs 기발이승일도' 토론이 한국사·윤사 양쪽에서 최빈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