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렌 키에르케고르 선생님의 첫 인사
반갑습니다. 쇠렌 키에르케고르입니다.
제가 살던 시대의 사람들은 세상 전체를 설명해 주는 거대한 이론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훌륭한 설명 어디에도 「지금 여기서 고민하며 살아가는 나 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평생 이렇게 물었습니다 — 그 말이 옳은가보다, 그 말이 나에게 진리인가.
오늘 당신이 안고 온 불안이 있다면, 억지로 밀어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불안을 고장 난 마음이 아니라, 당신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표시로 보았습니다.
그 마음을 어디서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먼저 알아 두면 좋아요
이분은 이런 고민에 말 걸어 줍니다
거창한 질문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아래 문장 중 하나를 그대로 들고 가도 대화는 시작됩니다.
- “진로가 막막해서 자꾸 불안합니다.”
- “다들 하는 대로 따라가면 안 되는 건가요?”
- “남과 비교하다 보면 제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 “재미있는 일만 좇으며 살면 왜 안 되나요?”
- “증명되지 않는 것을 믿는 건 어리석은 일 아닌가요?”
어떤 분인가요
덴마크의 고독한 철학자 · '실존'과 '단독자'를 처음 물은 신앙의 사상가
오늘 저자와의 대화에 쇠렌 키에르케고르를 모셨습니다. 반갑게 맞아 주세요. 그는 200년 전 코펜하겐에서, 거대한 철학 '체계'가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고 자신하던 시대에, "그런데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나 한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되물었던 사람입니다. 사랑하던 약혼자와 스스로 헤어지고, 신문에 조롱당하고, 교회와 싸우며 마흔둘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던진 물음 — 불안, 절망, 선택, 그리고 '신 앞에 홀로 선 나' — 은 훗날 실존주의라는 커다란 물줄기의 첫 샘이 되었습니다. 일곱 개의 방을 따라 그가 살았던 덴마크의 황금기, 파혼과 조롱의 상처, '실존의 세 단계'라는 사상,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남긴 물음까지 차근차근 둘러보며 그를 알아가 보세요.
1813년 코펜하겐에서 부유한 상인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난 해는 덴마크가 나라 살림의 파산을 선언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가난한 양치기 소년에서 자수성가한 사람이었지만, 깊은 우울과 죄의식을 안고 살았고 그 그늘은 아들에게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스물한 살이 되기 전에 어머니와 여섯 형제자매 가운데 다섯을 잃었습니다. 그 무렵 아버지에게 얽힌 어떤 비밀을 알게 되고 큰 충격을 받는데, 그는 이 일을 「대지진」이라 불렀습니다. 열일곱에 코펜하겐 대학 신학과에 들어갔으나 문학과 연극에 빠져 오래 방황했고, 학위는 스물일곱이 되어서야 마쳤습니다.
스물일곱에 레기네 올센과 약혼했다가 이듬해 스스로 파혼합니다. 자신의 우울과 글 쓰는 소명이 결혼과 함께 갈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자신이 냉정한 배신자로 보이는 것을 감수하면서 그녀를 놓아주었고, 이 상처는 이후 거의 모든 책에 스며듭니다. 파혼 뒤 그는 여러 가명을 앞세워 몇 해 사이에 놀라운 분량의 대표작들을 쏟아냈습니다.
말년에는 세상과 정면으로 부딪쳤습니다. 풍자 신문과 다투다 거리에서 웃음거리가 되었고, 태어나기만 하면 자동으로 신자가 되는 당시 국교회 제도를 향해 「이것은 참된 신앙이 아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 싸움의 한복판에서 길에 쓰러져, 1855년 마흔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살던 시대
작은 나라가 파산과 상실을 겪으면서도 문화의 절정을 꽃피우던 시대
덴마크 황금기 · 19세기 전반 (절대왕정의 황혼과 헤겔 철학의 전성)
키에르케고르가 태어난 1813년은 덴마크가 국가 파산(state bankruptcy)을 선언한 바로 그 해였습니다. 나폴레옹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영국 함대는 1807년 코펜하겐을 포격했고, 1814년 덴마크는 오랜 동군연합이던 노르웨이를 잃습니다. 나라의 힘은 기울었지만, 역설적으로 이 시기 코펜하겐의 문화는 절정에 올라 훗날 덴마크 황금기(Guldalder)라 불립니다. 동화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국민 시인이자 교육자 그룬트비가 같은 하늘 아래 활동했지요.
사상의 하늘을 덮고 있던 것은 독일 관념론, 특히 헤겔(G. W. F. Hegel)의 '체계(System)'였습니다. 헤겔은 역사와 정신이 이성의 필연적 법칙에 따라 하나의 거대한 전체로 완성된다고 보았고, 덴마크의 신학자 마르텐센 같은 이들이 이 헤겔 철학을 기독교에 접목해 유행시켰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평생 이 '체계'와 싸웁니다. 체계는 모든 것을 설명하지만, 정작 지금 여기서 결단하며 살아가는 한 개인은 그 안에 자리가 없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같은 시대를 살던 사람들
- G. W. F. 헤겔 (1770–1831) — 직접 만난 적은 없으나 평생의 지적 맞수 — '체계' 철학에 맞서 '실존하는 개인'을 내세움
- 레기네 올센 (Regine Olsen, 1822–1904) — 약혼했다가 스스로 파혼한 연인 — 그의 저술 전체에 그림자를 드리운 상처이자 원천
-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1805–1875) — 동시대 코펜하겐의 동화 작가 — 키에르케고르의 첫 저서가 그의 소설을 비평 대상으로 삼음
- J. P. 뮌스터 주교 (1775–1854) — 덴마크 국교회의 수장 — 그의 죽음(1854)이 키에르케고르의 '교회 공격'을 촉발함
- H. L. 마르텐센 (1808–1884) — 헤겔주의 신학자·후임 주교 — 키에르케고르가 겨냥한 '그리스도교국'의 상징
- 포울 마르틴 묄러 (1794–1838) — 코펜하겐 대학의 철학 교수 — 그가 아꼈고 『불안의 개념』을 헌정한 스승
살아오신 길
코펜하겐을 거의 떠나지 않은, 상처로 지은 삶
1813
0세
출생 — 코펜하겐
부유한 상인 미카엘의 막내로 태어남. 덴마크가 국가 파산을 선언한 해였다.
1830
17세
코펜하겐 대학 신학과 입학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신학을 택했으나 문학·철학에 빠져 오래 방황함.
1838
25세
아버지 사망 · 첫 저서 출간
막대한 유산으로 평생 저술에 전념할 바탕을 얻음. 유년의 '대지진'은 그의 신앙에 깊은 그림자를 남겼다.
1840–41
28세
레기네 올센과 약혼, 그리고 스스로 파혼
사랑을 희생한 이 결별이 이후 저술 전체의 원천이자 상처가 됨. 같은 해 학위논문 『아이러니의 개념』 제출.
1843
30세
『이것이냐 저것이냐』·『공포와 전율』 — 창작의 폭발
여러 가명을 쓰며 불과 몇 년 사이에 대표작들을 잇달아 발표하기 시작함.
1846
33세
코르사르 사건 — 조롱당한 저술가
풍자 신문과의 다툼으로 거리에서 희화화됨. '군중'과 여론에 대한 통찰이 깊어짐.
1849
36세
『죽음에 이르는 병』 출간
가명 안티-클리마쿠스로 '절망'을 인간 실존의 병으로 분석한 후기 대표작.
1855
42세
교회 공격 후 별세 — 코펜하겐
국교회를 향한 격렬한 논쟁 『순간』을 펴내던 중 길에서 쓰러져 그해 세상을 떠남.
사건 ①: 1841년, 레기네와의 파혼 — 침묵으로 지은 사랑
그는 사랑하던 레기네 올센과 약혼했다가 스스로 파혼했습니다. 자신의 우울과 저술가의 소명이 평범한 결혼과 함께 갈 수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세상에는 자신을 냉정한 배신자로 보이게 하면서까지 그녀를 놓아준 이 사건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공포와 전율』의 침묵, '무한한 체념'의 사상으로 되살아납니다.
사건 ②: 1843년, 가명들의 폭발 — 하나의 진리를 여러 목소리로
파혼 뒤 그는 빅토르 에레미타, 요하네스 데 실렌티오, 요하네스 클리마쿠스 같은 여러 **가명(익명)**을 앞세워 짧은 기간에 놀라운 분량의 책을 쏟아냈습니다. 이는 재주 자랑이 아니라 전략이었습니다. 정답을 직접 주입하는 대신, 서로 다른 삶의 관점을 인물로 세워 독자가 스스로 '어느 쪽이 내 삶인가'를 선택하게 하려는 **간접전달**의 방법이었지요.
사건 ③: 1846·1854–55년, 코르사르와 교회 공격 — 군중에 맞선 단독자
그는 풍자 신문 『코르사르』에 맞섰다가 온 도시의 웃음거리가 되었고, 말년에는 국교회 전체를 향해 "세례받았다고 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고 외쳤습니다. 편안한 다수 편에 서기를 거부하고 홀로 진리를 감당하려 한 이 싸움에서, '**군중은 비진리**'이며 참된 신앙은 '**신 앞에 선 단독자**'의 몫이라는 그의 확신이 가장 뜨겁게 드러납니다.
핵심 생각
실존의 세 단계 · 불안 · 절망 · 믿음의 도약 · 단독자
어려운 한자말은 뜻을 먼저 적고 한자는 괄호에 넣었습니다. 뜻만 알아도 충분합니다.
키에르케고르 사상의 출발점은 헤겔의 거대한 '체계'에 대한 반발입니다. 체계는 세상 전체를 설명하지만, 정작 지금 여기서 결단하며 살아가는 나 한 사람(실존)은 그 안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객관적으로 옳은 지식"보다 "나에게 진리인가"라는 물음, 곧 주체성(내면성)을 앞세웁니다. 인간은 심미적·윤리적·종교적이라는 실존의 세 단계를 지나며 자기 자신이 되어 가는데, 그 길목마다 불안(자유의 현기증)과 절망(자기를 잃는 병)이 기다립니다. 이 절망을 넘어 자기 자신이 되는 마지막 길은, 이성으로 증명되지 않는 것을 향해 온몸을 던지는 믿음의 도약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군중 속에 섞여서가 아니라 오직 신 앞에 홀로 선 단독자로서만 이루어진다고 그는 보았습니다.
실존 (지금 여기의 나)
Existents · existens
관념이나 체계 속의 '인간 일반'이 아니라, 매 순간 선택하고 결단하며 살아가는 구체적인 한 개인. 키에르케고르는 이 '실존하는 개인'을 철학의 중심에 처음으로 세워, 훗날 실존주의의 출발점이 됩니다.
진리는 주체성이다 — 『비학문적 후서』
실존의 세 단계
Stadier · æstetisk / etisk / religiøs · stadier
삶의 방식을 세 단계로 봅니다. ① 순간의 쾌락·아름다움을 좇는 **심미적** 단계, ② 의무와 책임을 받아들이는 **윤리적** 단계, ③ 신 앞에서 자기를 던지는 **종교적** 단계. 단계는 지식이 아니라 '결단의 도약'으로만 넘어갑니다.
권태 (심미적 실존의 위협)
Kjedsomhed · kjedsomhed
쾌락과 자극만을 좇는 심미적 삶이 끝내 부딪히는 공허. 자극이 아무리 커도 결국 지루함이 밀려오며, 이 권태가 '이대로 살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사람을 몰아세웁니다.
불안 (자유의 현기증)
Angest · angest
무언가 정해진 대상을 무서워하는 '공포'와 달리,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가능성(자유) 앞에서 느끼는 어지러움**입니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자유가 도리어 우리를 아찔하게 만든다는 통찰입니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다 — 『불안의 개념』
이분의 말
- 실존(Existents) — 남이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지금 여기의 나
- 실존의 세 단계 — 재미를 좇는 삶 · 책임지는 삶 · 자기를 온전히 거는 삶
- 불안(Angest) —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자유 앞의 어지러움
- 절망(Fortvivlelse) —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한 상태, 죽음에 이르는 병
- 도약(Springet) — 증명되지 않는 것 앞에서 온몸을 걸고 내딛는 결단
- 단독자(hiin Enkelte) — 여럿 뒤에 숨지 않고 홀로 책임지는 한 사람
- 군중은 비진리 — 다수라는 것이 옳음의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 간접전달 — 정답을 주입하지 않고 스스로 깨닫게 하는 방법
남기신 글
가명의 다성음악 — 한 사람이 여러 목소리로 쓴 책들
키에르케고르의 저작에는 두 갈래가 있습니다. 하나는 빅토르 에레미타, 요하네스 데 실렌티오, 요하네스 클리마쿠스, 안티-클리마쿠스 같은 가명(익명)으로 낸 철학적 저작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이름으로 낸 종교적 강화(講話)입니다. 그는 가명 저작에 대해 "거기에는 나의 말이 한 마디도 없다"며, 그 인물들의 생각을 자신의 주장과 곧바로 같은 것으로 읽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각 가명은 서로 다른 삶의 관점을 대변하는 하나의 '목소리'이기 때문입니다. 아래 저서를 읽을 때도 '이 말은 어떤 인물의 입에서 나온 것인가'를 함께 살피면 좋습니다.
「아이러니의 개념」
1841 (학위논문)
Om Begrebet Ironi · 1841
소크라테스를 중심으로 '아이러니'를 다룬 석사 학위논문. 진리를 직접 주장하지 않고 물음과 반어로 상대를 흔들어 스스로 깨닫게 하는 소크라테스의 방식은, 훗날 그 자신의 '간접전달' 저술 전략의 뿌리가 됩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1843 (가명: 빅토르 에레미타)
Enten-Eller · Either/Or · 1843
심미적 삶을 사는 '청년 A'의 글과 윤리적 삶을 권하는 '빌헬름 판사'의 편지를 나란히 놓아, 독자에게 '너는 어느 쪽으로 살 것인가'를 묻는 그의 출세작입니다. 유명한 「유혹자의 일기」가 이 책에 들어 있습니다.
⚠ 「유혹자의 일기」는 유혹을 미화하는 도발적 대목입니다. 이는 저자의 주장이 아니라 '심미적 인간'을 극단까지 그려 보인 것으로, 인물의 관점과 저자의 생각을 구별해 읽어야 합니다.
「공포와 전율」
1843 (가명: 요하네스 데 실렌티오)
Frygt og Bæven · Fear and Trembling · 1843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 앞에 선 아브라함을 통해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는 '무한한 체념'과, 부조리를 뚫고 다시 되받는 '믿음'을 구별하며 '신앙의 기사'를 그려 냅니다.
⚠ '믿음의 도약'이라는 널리 쓰이는 표현을 키에르케고르 자신은 그대로 쓴 적이 드뭅니다. 그는 주로 '도약'과 '믿음의 움직임'이라고 말했으며, '목적론적 정지'는 살인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아니라 신앙의 역설을 드러내려는 사고실험으로 신중히 읽어야 합니다.
「불안의 개념」
1844 (가명: 비길리우스 하우프니엔시스)
Begrebet Angest · The Concept of Anxiety · 1844
'불안(angest)'을 심리학의 눈으로 파고든 책. 여기서 불안은 대상이 뚜렷한 '공포'가 아니라 아직 정해지지 않은 자유·가능성 앞에서의 어지러움이며,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이기에 피할 수 없는 조건임을 밝힙니다.
⚠ 매우 압축적이고 신학적인 저작으로, 오늘날의 일상어 '불안(걱정)'과는 뜻이 다른 전문 개념입니다. 원죄·죄 같은 신학 배경 위에서 쓰였다는 점을 감안해 읽어야 합니다.
「결론으로서의 비학문적 후서」
1846 (가명: 요하네스 클리마쿠스)
Afsluttende uvidenskabelig Efterskrift · 1846
"진리는 주체성이다"라는 명제로, 객관적으로 증명된 지식보다 '나에게 진리로 살아 내는 내면의 열정'을 앞세운 대작입니다. 헤겔식 '체계' 철학에 대한 정면 비판이자, 그의 실존 사상이 가장 넓게 펼쳐진 책입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
1849 (가명: 안티-클리마쿠스)
Sygdommen til Døden · The Sickness Unto Death · 1849
'절망'을 몸이 아니라 '자기(self)'를 죽이는 병으로 분석한 후기 대표작.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하는 것이 절망이며, 그 치유는 자기를 세운 힘, 곧 신과의 관계 회복에 있다고 봅니다.
「순간」
1855 (실명, 교회 공격 논설)
Øjeblikket · The Moment · 1855
세상을 떠나던 해에 펴낸, 덴마크 국교회를 향한 격렬한 논쟁집입니다. "세례받았다고 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제도화된 '그리스도교국'은 참된 신약의 신앙과 다르다고 외친, 그의 마지막 싸움의 기록입니다.
⚠ 특정 시대 덴마크 국교회를 겨냥한 역사적 논쟁 글입니다. 오늘의 어느 교회·종교를 겨냥한 것으로 확대해석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다시 읽는 한 구절
이분이 직접 쓴 문장입니다. 소리 내어 한 번 읽어 보세요.
Angest er Frihedens Svimmelhed.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다.— 「『불안의 개념』 (1844)」
가장 큰 위험, 곧 자기 자신을 잃는 일은, 마치 아무것도 아닌 듯 세상에서 아주 조용히 일어난다.— 「『죽음에 이르는 병』 (1849)」
오늘 우리에게
AI 시대 — 불안·군중·자기 상실을 다시 읽는다
200년 전 키에르케고르가 오늘 청소년에게 직접 말을 겁니다. 무한한 선택지와 남들의 시선, 알고리즘이 골라 주는 정답 속에서 '나 자신'을 잃기 쉬운 시대에, 그가 묻던 물음 — 불안, 절망, 그리고 '나에게 진리인가' — 은 오히려 더 절실해집니다. 다만 그의 통찰을 오늘의 문제와 잇는 것은 '확정된 정답'이 아니라 '함께 생각해 볼 실마리'로 제시되는 것임을 기억해 주세요.
단독자 · 군중은 비진리
→ SNS 익명 군중, 좋아요·여론의 압력
'모두가 그렇게 한다'는 다수가 곧 옳음은 아닙니다. 군중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책임지는 '한 사람'으로 서는 법을 묻는 자원입니다.
불안 (자유의 현기증)
→ 선택지 과잉·진로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자유가 도리어 어지럼을 줍니다. 불안은 없애야 할 고장이 아니라, 내가 자유로운 존재라는 신호로 껴안아 볼 수 있다는 관점.
절망 (자기 상실)
→ SNS 비교·타인의 시선 속 '나 없음'
가장 조용한 절망은 남과 비교하며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잃는 것. '지금 나는 누구의 삶을 살고 있나'를 되묻게 합니다.
AI 시대와 이어지는 자리
검색과 AI가 '객관적인 답'을 끝없이 내어 주는 시대에, 키에르케고르는 "그래서 그것이 너에게는 어떤 진리인가"라고 되묻는다. 그 물음만큼은 아직 누구도 대신해 주지 못한다.
가르치는 방식
이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정답을 먼저 건네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나란히 놓아 보인 뒤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여러 가명으로 책을 쓴 것도 같은 이유였습니다. 스스로 고르지 않은 답은 끝내 그 사람의 것이 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다루는 물음이 무거워 고등학생에게 권합니다.
우리 반에서
쇠렌 키에르케고르 선생님을 만나는 방법
수업이 아니라 만남입니다. 한 번의 만남은 늘 같은 순서로 닫힙니다 — 오늘의 질문 → 현자와의 대화 → 고전 한 구절 다시 읽기 → 오늘 해볼 한 가지.
이것이냐 저것이냐 — 다섯 번의 만남
혼자 만나기5번의 만남재미를 좇는 삶 · 책임지는 삶 · 불안 · 나를 잃는다는 것 · 나의 결론을 차례로 이야기합니다.
그분과 나, 둘이서
흔들린 순간 — 마음 기록
마음 일기오늘 마음이 흔들린 순간을 몇 줄 적으면, 그 흔들림이 무엇 앞에서 생겼는지 함께 짚고 짧은 답장을 보냅니다.
매일 조금씩 주고받기
다들 그렇게 하니까 — 함께 이야기
여럿이 함께니체·장자 선생님과 한자리에 앉아 '여럿'과 '나 한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여러 분과 한자리에
더 깊이
쇠렌 키에르케고르 선생님의
「지혜의 전당」이 열려 있습니다.
일곱 개의 방을 차례로 걸으며 한 사람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봅니다. 마지막 방에서 그분이 당신에게 묻습니다 —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 오늘 모실 분
- 살던 시대
- 살아오신 길
- 핵심 생각
- 남기신 글
- 오늘 우리에게
- 이제 당신 차례
대화를 시작하려면
쇠렌 키에르케고르 선생님과 이야기하려면
우리 반에 들어오세요.
여기는 강의실이 아니라 만나는 자리입니다. 우리 반에 들어오면 다섯 번의 만남, 여러 분과 함께하는 이야기, 매일의 마음 일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소개 · 남기신 글 · 「지혜의 전당」은 지금도 그냥 둘러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