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기국 (이는 두루 통하고 기는 한정된다)
理通氣局
이(理)는 형체가 없으므로 본말·선후 없이 두루 '통(通)'하고, 기(氣)는 형체가 있으므로 본말·선후가 있어 '국(局)'한다. 보편 원리와 특수 현실을 함께 보는 율곡 형이상학의 핵심.
理無形而氣有形, 故理通而氣局 — 이는 무형하고 기는 유형하므로, 이는 통하고 기는 국한다 (『성학집요』)
① 오늘 모실 분

李珥 · 1536 ~ 1584
오늘 저자와의 대화에 율곡 이이를 모셨습니다. 반갑게 맞아 주세요. 아홉 번 과거에 모두 장원해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불린 천재이자, 어머니 신사임당을 잃고 금강산에 들어갔다가 다시 유학으로 돌아온 분입니다. 일곱 개의 방을 따라 그가 살던 16세기 조선, 퇴계 이황과의 만남, 이통기국(理通氣局)과 무실(務實)의 사상, 그리고 그가 끝내 고치려 한 '중쇠(中衰)의 나라'까지 차근차근 둘러보며 그를 알아가 보세요.
여기서부터 일곱 개의 방이 이어집니다. 천천히 걸어 내려가면, 마지막 방에서 그분이 당신에게 묻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장 자주 만나는 율곡의 얼굴 — 5,000원권 지폐 도안의 율곡 이이 초상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 PD
② 살던 시대
조선 중기 · 중종–선조 (16세기, 1536–1584)
율곡의 생애(1536–1584)는 거듭된 사화(士禍)로 사림(士林)이 큰 타격을 입은 직후의 조선이었습니다. 특히 1545년 을사사화로 사림이 꺾였다가, 1565년 문정대비가 죽고 권신 윤원형이 실각하면서 사림이 다시 정계로 복귀하던 정치 지형의 전환기였습니다.
그러나 회복은 곧 분열로 이어졌습니다. 1575년 동서 분당(東西分黨) — 김효원의 동인과 심의겸의 서인으로 사림이 갈라지며 정쟁이 심화되었고, 연산군 이래의 폐법(弊法)은 시정되지 못한 채 국가 기강과 국방이 함께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율곡은 이 시대를 국력이 쇠한 '중쇠기(中衰期)'로 진단했습니다. 창업기·수성기를 지나 이미 폐단이 쌓인 경장기(更張期)이니, 낡은 법을 과감히 고치는 경장(更張)이 절실하다고 본 것입니다. 사상적으로는 성리학(주자학)이 지배 이념으로 정착하면서, 이기심성론(理氣心性論)을 둘러싼 논쟁이 학문의 중심을 이루던 때였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던 사람들
③ 살아오신 길
이이(李珥)는 1536년(중종 31) 강원도 강릉 외가 오죽헌의 몽룡실(夢龍室)에서 태어났습니다. 본관 덕수(德水), 자 숙헌(叔獻), 호 율곡(栗谷)·석담(石潭)·우재(愚齋), 아명은 현룡(見龍). 아버지는 이원수(李元秀), 어머니는 시(詩)·그림·글씨로 이름난 신사임당(申師任堂)입니다.
어려서부터 비범했습니다. 8세에 파주 율곡리 화석정(花石亭)에서 시를 지었고, 13세에 진사 초시에 합격했습니다. 이후 전후 아홉 차례 과거에 모두 장원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불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을 빚은 것은 영광이 아니라 상실이었습니다. 1551년 16세에 어머니 신사임당이 별세하자 파주 자운산에 장례 지내고 3년간 시묘했고, 슬픔 끝에 금강산으로 들어가 한동안 불교를 공부했습니다. 1555년 20세에 하산하여 유학에 전심하기로 결심합니다. 뒷날 이 입산 경력은 그를 공격하는 빌미가 되기도 했습니다.
1558년 봄, 예안 도산으로 퇴계 이황을 방문했고, 그해 겨울 별시에서 「천도책(天道策)」으로 장원했습니다. 1564년 호조좌랑으로 출사한 뒤 예조·이조좌랑을 거쳐 1568년 천추사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우부승지를 지내고 1582년 이조판서, 1583년 병조판서에 올랐습니다.
관직에 있는 내내 그는 글로 임금을 가르치고 나라를 고치려 했습니다. 「동호문답」(1569)·「만언봉사」(1574)·『성학집요』(1575)·『격몽요결』(1577)이 그 산물입니다. 1584년(선조 17) 서울 대사동에서 49세로 별세, 파주 자운산 선영에 묻혔습니다. 영의정에 추증되고 시호는 문성(文成), 문묘에 종향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한평생
1536
0세
출생 — 강릉 오죽헌 몽룡실
어머니는 신사임당. 외가에서 태어남. 중종 31년.
1548
13세
13세에 진사 초시 합격
어려서부터 화석정에서 시를 지을 만큼 재능이 뛰어났다.
1551
16세
어머니 신사임당 별세
3년 시묘 후 금강산 입산. 율곡 사상의 결정적 전환점.
1555
20세
금강산 하산 · 유학에 전심
불교 공부를 접고 유학으로 돌아옴. 「자경문(自警文)」을 지어 스스로를 다잡음.
1558
23세
퇴계 이황 방문 · 「천도책」 장원
도산으로 퇴계를 찾아뵘. 그해 겨울 별시 장원.
1564
29세
호조좌랑으로 출사
이로써 구도장원의 과거 행보가 마무리되고 관직 생활 시작.
1569
34세
「동호문답」을 선조에게 올림
동호독서당에서 사가독서하며 지은 11편 문답체 개혁론.
1574
39세
「만언봉사」 상소
1만 자에 이르는 장문 상소. 시의(時宜)와 실공(實功)을 역설.
1575
40세
『성학집요』 진상
홍문관 부제학으로서 제왕의 학을 위해 저술해 선조에게 바침.
1577
42세
『격몽요결』 저술
해주 은병정사에서 초학자를 위한 입문서를 지음.
1584
49세
별세 — 서울 대사동
파주 자운산 선영에 안장. 시호 문성(文成), 문묘 종향.
사건 ①: 1551–1555년, 어머니의 죽음과 금강산 — 상실에서 다시 일어서다
16세에 어머니 신사임당을 잃은 슬픔은 그를 금강산으로 이끌었습니다. 한동안 불교를 공부했지만 20세에 하산하여 유학에 전심하기로 결심하고, 스스로를 경계하는 「자경문(自警文)」을 지었습니다. 이 입산-하산의 경험은 율곡을 단순한 천재가 아니라 '한번 길을 잃었다가 스스로 돌아온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사건 ②: 1558년, 도산의 퇴계 — 존경하되 갈라서다
23세의 율곡은 58세의 노대가 퇴계 이황을 도산으로 찾아뵙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깊이 존경했지만, 이(理)와 기(氣)의 관계를 보는 눈은 끝내 달랐습니다. 퇴계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에 동의하지 않은 율곡은 훗날 '발하는 것은 기뿐'이라는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로 자신의 길을 엽니다.
사건 ③: 1572년, 성혼과의 9차례 논변 — 자기 사상을 벼리다
37세의 율곡은 한 살 위의 학우 우계 성혼과 파주 율곡리에서 이기·사단칠정·인심도심을 두고 1년간 아홉 차례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퇴계-기대승 논변과 달리 단기간에 압축적으로 이뤄진 이 논변은, 율곡이 자신의 견해를 정리·심화하여 『성학집요』의 성리설과 만년작 「인심도심설」의 핵심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율곡 이이 선생 기념비 — 그를 기리는 후대의 비석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 CC BY-SA
④ 핵심 생각
율곡 사상의 한가운데에는 '나뉘되 갈라지지 않는' 이(理)와 기(氣)의 관계가 있습니다. 그는 퇴계처럼 이와 기를 둘로 갈라 따로 움직인다고 보지 않고, 이와 기는 떨어질 수 없으며(理氣不相離) 실제로 발하는 것은 기뿐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런 형이상학은 그대로 현실론으로 이어집니다. 보편 원리(理)는 두루 통하지만 구체적 현실(氣)은 저마다 한정되어 있으니, 시대와 형편에 맞게 낡은 법을 고치는 무실(務實)·경장(更張)이 학문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에게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은 하나였습니다.
어려운 한자말이 나와도 겁내지 마세요. 뜻을 먼저 적어 두었습니다. 뜻만 알아도 충분합니다.
理通氣局
이(理)는 형체가 없으므로 본말·선후 없이 두루 '통(通)'하고, 기(氣)는 형체가 있으므로 본말·선후가 있어 '국(局)'한다. 보편 원리와 특수 현실을 함께 보는 율곡 형이상학의 핵심.
理無形而氣有形, 故理通而氣局 — 이는 무형하고 기는 유형하므로, 이는 통하고 기는 국한다 (『성학집요』)
氣發理乘一途說
발(發)하는 것은 기이고, 발하게 하는 원인자는 이다. 이와 기는 떨어질 수 없어 마치 한 물건 같으므로 발용(發用)은 하나뿐이며, 퇴계의 '호발(互發)'은 있을 수 없다는 학설.
發之者氣也, 所以發者理也 — 발하는 것은 기요, 발하게 하는 까닭은 이다 (『기발이승일도설』)
務實
허울이 아니라 실지(實地)의 공효(實功)에 힘쓰는 것. 「동호문답」 「논무실위수기지요」의 핵심으로, 율곡 경세론 전체를 관통하는 실천 정신.
更張
거문고 줄을 고쳐 매듯 시대에 맞지 않게 된 법과 제도를 과감히 개혁함. 율곡은 당대를 창업·수성이 아닌 경장기로 진단했다.
時宜
때에 따라 변통하여 법을 만들어 백성을 구하는 것. 고정된 원칙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정치적 판단을 강조한 율곡 정치학의 열쇠말.
時宜者, 隨時變通, 設法救民也 — 시의란 때에 따라 변통하여 법을 만들어 백성을 구함이다 (「만언봉사」)
修己治人
『대학』의 명명덕·신민·지어지선 체계를 따라 자기 수양(修己)과 백성 다스림(治人)을 하나로 통합한 제왕학. 『성학집요』의 전체 구성 원리.
立志
배움의 첫걸음으로, 먼저 뜻을 세워 스스로 성인이 될 것을 기약하고 물러서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것. 『격몽요결』 제1장의 가르침.
⑤ 남기신 글
율곡은 글로 나라를 고치려 했습니다. 한쪽으로는 임금에게 올리는 제왕학과 개혁론(『성학집요』·「동호문답」·「만언봉사」)을, 다른 한쪽으로는 처음 배우는 이를 위한 입문서(『격몽요결』)를 남겼습니다. 이 글들은 모두 사후 『율곡전서(栗谷全書)』로 묶여 한국고전종합DB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1575 (선조 8)
聖學輯要
홍문관 부제학으로서 제왕의 학을 위해 저술해 선조에게 바친 제왕학서. 『대학』의 명명덕·신민·지어지선 체계를 따라 통설(統說)·수기(修己)·정가(正家)·위정(爲政) 등으로 수기와 치인을 통합했다. 율곡 성리설의 집약.
1577
擊蒙要訣
해주 은병정사에서 초학자를 위해 지은 입문서. 입지·혁구습·지신·독서·사친·상제·제례·거가·접인·처세 10장. 제1장 「입지」의 '먼저 뜻을 세우라'는 가르침이 유명하다. 친필 수고본(국보)이 강릉 오죽헌에 전한다.
1569 (선조 2)
東湖問答
34세에 동호독서당에서 사가독서하며 지어 선조에게 올린 11편 문답체 개혁론. 「논군도」·「논무실위수기지요」·「논안민지술」 등에서 무실(務實)로 폐법을 혁신하고 언로를 열 것을 논했다.
1574
萬言封事
1만여 자에 이르는 장문 상소. 시의(時宜)와 실공(實功)을 강조하며 당대의 일곱 가지 폐단과 그 개혁 방안을 조목조목 제시했다. 율곡 경장론의 정수.
성혼과의 논변(1572) 전후
氣發理乘一途說
퇴계의 이기호발설에 맞서 '발하는 것은 기뿐이며 이는 거기에 올라탄다'고 논증한 율곡 성리학의 대표 논설. 이기불상리(理氣不相離)에 근거해 호발(互發)을 부정한다.
⚠ 흔히 율곡을 퇴계의 '주리(主理)'에 맞선 '주기(主氣)' 사상가로 단순 대립시키지만, 이 '주리/주기' 도식의 타당성은 학계 미합의이며 SEP도 율곡을 단순 주기론자로 규정하기 어렵다고 본다.
다시, 읽다
이분이 직접 쓴 문장입니다. 소리 내어 한 번 읽어 보세요 — 이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理無形而氣有形, 故理通而氣局.이(理)는 형체가 없고 기(氣)는 형체가 있다. 그러므로 이는 두루 통하고, 기는 한정된다.— 「『성학집요』 (이통기국)」
發之者氣也, 所以發者理也. 非氣則不能發, 非理則無所發.발하는 것은 기요, 발하게 하는 까닭은 이다. 기가 아니면 발할 수 없고, 이가 아니면 발할 바가 없다.— 「『기발이승일도설』」
時宜者, 隨時變通, 設法救民也.시의(時宜)란 때에 따라 변통하여 법을 만들어 백성을 구하는 것이다.— 「「만언봉사」」
처음 배우는 이는 먼저 뜻을 세워, 스스로 성인이 될 것을 기약하고, 스스로 작게 여겨 물러서려는 생각을 조금도 내지 말아야 한다.— 「『격몽요결』 입지장」
무실(務實) — 참되고 실속 있도록 힘써야 모든 폐해를 혁신할 수 있으니, 그러려면 먼저 뜻을 세워야(立志) 한다.— 「「동호문답」 논무실위수기지요」

율곡 이이의 서한 — 글로 임금을 가르치고 벗과 사상을 벼린 그의 붓끝이 남은 자취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 PD
⑥ 오늘 우리에게
율곡의 사상은 '원리와 현실의 거리'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를 묻습니다. 보편 원리(理)는 두루 통하지만 현실(氣)은 저마다 한정되어 있다는 이통기국, 때에 맞게 낡은 틀을 고치자는 무실·경장은 빠르게 변하는 기술 사회에 곧바로 말을 겁니다. 다만 'AI 시대 유효성'을 직접 다룬 학술 평가는 아직 빈약하므로, 아래 연결은 일반적 현대적 의의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직합니다.
→ 보편 원칙 대 현장 맥락 — AI 윤리 원칙의 현지 적용
'인간 존엄' 같은 원리(理)는 어디서나 통하지만, 그것을 적용할 현실(氣)은 나라·상황마다 다르다 — 보편 원칙과 구체적 맥락을 함께 보는 눈.
→ 보여주기식 정책·전시성 기술 도입
허울이 아니라 실제 효과(實功)에 힘쓰라 — AI 도입이 진짜 문제를 푸는지 묻는 '실속의 잣대'.
→ 기술 변화에 뒤처진 낡은 제도·법
거문고 줄을 고쳐 매듯, 시대에 맞지 않게 된 규칙은 과감히 다시 짠다 — 기술 사회의 제도 개혁 정신.
→ 급변하는 환경에서의 의사결정
고정된 정답이 아니라 '지금 이 때에 마땅한 것'을 판단하는 능력 — 변동성 높은 시대의 핵심 역량.
→ AI가 답을 대신 주는 시대의 자기주도성
먼저 스스로 뜻을 세우라 — 추천·자동화에 휩쓸리지 않는 배움의 주체성, 메타인지의 출발점.
→ 디지털 시민성 — 자기 수양과 사회적 책임
자기를 닦는 일과 세상을 고치는 일은 둘이 아니다 — 미디어 리터러시와 시민 참여의 통합 모델.
율곡을 퇴계와 우열로 가르거나, 특정 지역·당파(서인·기호학파)의 정통성과 곧바로 연결 짓는 서술은 지양해야 합니다. 또 그를 '주기론자', 퇴계를 '주리론자'로 단순 대립시키는 이분법은 학계에서 비판받습니다(학계 미합의). 율곡 본인의 붕당론은 화합 지향이었고, 그가 주장했다고 전하는 '십만양병설(十萬養兵說)' 역시 당시 조선의 사회·경제적 역량으로 보아 실현 가능성을 의심하는 학자들이 있어 사실 여부가 학계 미합의 상태입니다.
⑦ 이제 당신 차례
당신은 일곱 개의 방을 모두 둘러보았습니다. 율곡은 아홉 번 장원한 천재였지만, 어머니를 잃고 길을 잃었다가 스스로 돌아온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평생 매달린 질문은 하나였습니다 — '높은 이상을 어떻게 무너지는 현실 속에서 실제로 이뤄낼 것인가.' '바로 대화하기'에서 그가 당신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고 오세요
그대로 옮겨 적어도 됩니다.
선생님 · 담당자를 위한 안내
이황과 짝을 이루는 조선 성리학 두 거두 — 수능 윤리와 사상의 한국 성리학 단원(이통기국·기발이승일도설)과 고1 한국사 16세기 사림 정치에서 최빈출로 다뤄집니다.
| 과목 | 학년 | 단원 | 비중 |
|---|---|---|---|
| 수능 윤리와 사상 | 고2-3 | 한국 성리학(이통기국·기발이승일도설) | 최빈출 ⭐⭐⭐ |
| 고1 한국사 | 고1 | 16세기 조선 성리학·사림 정치(이황·이이) | 빈출 |
| 고등 도덕·윤리 | 고1 | 인성교육 — 『격몽요결』 입지·혁구습 | 가끔 |
'이황 vs 이이' 토론(주리 vs 주기 / 이기호발 vs 기발이승일도)은 한국사·윤리와 사상 양쪽에서 최빈출 주제입니다. 다만 율곡을 '주기론자', 퇴계를 '주리론자'로 단순 대립시키는 이분법은 학계 미합의이니 주의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