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자와 위인들
우리나라의 현자와 위인지혜의 전당 있음

율곡 이이

李珥

李珥 · Yi I (Yulgok)

🕰️ 1536 ~ 1584🏞️ 조선 · 강릉 / 한양🎒 초·중·고학년 눈높이

처음 배우는 사람의 마음부터 세우라 했다.

이치와 기운은 둘이면서 하나다 — 배움은 곧 세상을 다스리는 일

율곡 이이 선생님의 첫 인사

어서 오시오. 율곡 이이라 하오.

나는 일찍이 「배움이란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로 세우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있다」 여겼소.

오늘 당신이 풀고자 하는 것 — 마음의 일이오, 아니면 세상의 일이오? 무엇이든 함께 그 실마리를 찾아봅시다.

먼저 알아 두면 좋아요

이분은 이런 고민에 말 걸어 줍니다

거창한 질문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아래 문장 중 하나를 그대로 들고 가도 대화는 시작됩니다.

  • 공부할 마음이 잘 안 생겨요.
  • 다짐이 사흘을 못 갑니다.
  • 고치고 싶은 버릇이 있어요.
  • 말만 하고 안 하는 제가 싫어요.
  • 뜻을 세운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어떤 분인가요

이론과 현실을 잇고, 무너지는 나라를 고치려 한 경장(更張)의 경세가

오늘 저자와의 대화에 율곡 이이를 모셨습니다. 반갑게 맞아 주세요. 아홉 번 과거에 모두 장원해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불린 천재이자, 어머니 신사임당을 잃고 금강산에 들어갔다가 다시 유학으로 돌아온 분입니다. 일곱 개의 방을 따라 그가 살던 16세기 조선, 퇴계 이황과의 만남, 이통기국(理通氣局)과 무실(務實)의 사상, 그리고 그가 끝내 고치려 한 '중쇠(中衰)의 나라'까지 차근차근 둘러보며 그를 알아가 보세요.

살던 시대

사화의 상처와 분당의 시작 — '중쇠기(中衰期)'의 조선

조선 중기 · 중종–선조 (16세기, 1536–1584)

태어남 (강릉 오죽헌) · 1536
어머니 신사임당을 여읨 · 1551
과거에 잇달아 장원 · 1564
『격몽요결』 지음 · 1577
『성학집요』 임금께 올림 · 1575
세상을 떠남 · 1584

율곡의 생애(1536–1584)는 거듭된 사화(士禍)로 사림(士林)이 큰 타격을 입은 직후의 조선이었습니다. 특히 1545년 을사사화로 사림이 꺾였다가, 1565년 문정대비가 죽고 권신 윤원형이 실각하면서 사림이 다시 정계로 복귀하던 정치 지형의 전환기였습니다.

그러나 회복은 곧 분열로 이어졌습니다. 1575년 동서 분당(東西分黨) — 김효원의 동인과 심의겸의 서인으로 사림이 갈라지며 정쟁이 심화되었고, 연산군 이래의 폐법(弊法)은 시정되지 못한 채 국가 기강과 국방이 함께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던 사람들

  • 퇴계 이황 (李滉, 1501–1570)35세 연상의 선배 대학자 — 1558년 율곡이 도산으로 직접 찾아뵘. 이기호발설을 두고 학문적으로 갈라짐
  • 우계 성혼 (成渾, 1535~1598)한 살 위의 평생 학우 — 1572년 9차례에 걸친 이기·사단칠정·인심도심 논변의 상대
  • 기대승 (奇大升, 1527–1572)퇴계와 사단칠정 논변을 벌인 학자 — 율곡이 비판적으로 계승·대응한 직접 배경
  • 선조 (宣祖, 재위 1567–1608)율곡이 「동호문답」·「만언봉사」·『성학집요』를 올린 임금

살아오신 길

강릉 오죽헌에서 파주 자운산까지 — 구도장원공의 길

  1. 1536

    0

    출생 — 강릉 오죽헌 몽룡실

    어머니는 신사임당. 외가에서 태어남. 중종 31년.

  2. 1548

    13

    13세에 진사 초시 합격

    어려서부터 화석정에서 시를 지을 만큼 재능이 뛰어났다.

  3. 1551

    16

    어머니 신사임당 별세

    3년 시묘 후 금강산 입산. 율곡 사상의 결정적 전환점.

  4. 1555

    20

    금강산 하산 · 유학에 전심

    불교 공부를 접고 유학으로 돌아옴. 「자경문(自警文)」을 지어 스스로를 다잡음.

  5. 1558

    23

    퇴계 이황 방문 · 「천도책」 장원

    도산으로 퇴계를 찾아뵘. 그해 겨울 별시 장원.

  6. 1564

    29

    호조좌랑으로 출사

    이로써 구도장원의 과거 행보가 마무리되고 관직 생활 시작.

  7. 1569

    34

    「동호문답」을 선조에게 올림

    동호독서당에서 사가독서하며 지은 11편 문답체 개혁론.

  8. 1574

    39

    「만언봉사」 상소

    1만 자에 이르는 장문 상소. 시의(時宜)와 실공(實功)을 역설.

  9. 1575

    40

    『성학집요』 진상

    홍문관 부제학으로서 제왕의 학을 위해 저술해 선조에게 바침.

  10. 1577

    42

    『격몽요결』 저술

    해주 은병정사에서 초학자를 위한 입문서를 지음.

  11. 1584

    49

    별세 — 서울 대사동

    파주 자운산 선영에 안장. 시호 문성(文成), 문묘 종향.

사건 ①: 1551–1555년, 어머니의 죽음과 금강산 — 상실에서 다시 일어서다

16세에 어머니 신사임당을 잃은 슬픔은 그를 금강산으로 이끌었습니다. 한동안 불교를 공부했지만 20세에 하산하여 유학에 전심하기로 결심하고, 스스로를 경계하는 「자경문(自警文)」을 지었습니다. 이 입산-하산의 경험은 율곡을 단순한 천재가 아니라 '한번 길을 잃었다가 스스로 돌아온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사건 ②: 1558년, 도산의 퇴계 — 존경하되 갈라서다

23세의 율곡은 58세의 노대가 퇴계 이황을 도산으로 찾아뵙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깊이 존경했지만, 이(理)와 기(氣)의 관계를 보는 눈은 끝내 달랐습니다. 퇴계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에 동의하지 않은 율곡은 훗날 '발하는 것은 기뿐'이라는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로 자신의 길을 엽니다.

사건 ③: 1572년, 성혼과의 9차례 논변 — 자기 사상을 벼리다

37세의 율곡은 한 살 위의 학우 우계 성혼과 파주 율곡리에서 이기·사단칠정·인심도심을 두고 1년간 아홉 차례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퇴계-기대승 논변과 달리 단기간에 압축적으로 이뤄진 이 논변은, 율곡이 자신의 견해를 정리·심화하여 『성학집요』의 성리설과 만년작 「인심도심설」의 핵심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핵심 생각

이통기국 · 기발이승일도 · 무실과 경장

어려운 한자말은 뜻을 먼저 적고 한자는 괄호에 넣었습니다. 뜻만 알아도 충분합니다.

율곡 사상의 한가운데에는 '나뉘되 갈라지지 않는' 이(理)와 기(氣)의 관계가 있습니다. 그는 퇴계처럼 이와 기를 둘로 갈라 따로 움직인다고 보지 않고, 이와 기는 떨어질 수 없으며(理氣不相離) 실제로 발하는 것은 기뿐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런 형이상학은 그대로 현실론으로 이어집니다. 보편 원리(理)는 두루 통하지만 구체적 현실(氣)은 저마다 한정되어 있으니, 시대와 형편에 맞게 낡은 법을 고치는 무실(務實)·경장(更張)이 학문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에게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은 하나였습니다.

이통기국 (이는 두루 통하고 기는 한정된다)

理通氣局

이(理)는 형체가 없으므로 본말·선후 없이 두루 '통(通)'하고, 기(氣)는 형체가 있으므로 본말·선후가 있어 '국(局)'한다. 보편 원리와 특수 현실을 함께 보는 율곡 형이상학의 핵심.

理無形而氣有形, 故理通而氣局 — 이는 무형하고 기는 유형하므로, 이는 통하고 기는 국한다 (『성학집요』)

기발이승일도설 (기가 발하고 이가 올라타는 한 길)

氣發理乘一途說

발(發)하는 것은 기이고, 발하게 하는 원인자는 이다. 이와 기는 떨어질 수 없어 마치 한 물건 같으므로 발용(發用)은 하나뿐이며, 퇴계의 '호발(互發)'은 있을 수 없다는 학설.

發之者氣也, 所以發者理也 — 발하는 것은 기요, 발하게 하는 까닭은 이다 (『기발이승일도설』)

무실 (참되고 실속 있는 일에 힘씀)

務實

허울이 아니라 실지(實地)의 공효(實功)에 힘쓰는 것. 「동호문답」 「논무실위수기지요」의 핵심으로, 율곡 경세론 전체를 관통하는 실천 정신.

경장 (낡은 법을 고쳐 새롭게 함)

更張

거문고 줄을 고쳐 매듯 시대에 맞지 않게 된 법과 제도를 과감히 개혁함. 율곡은 당대를 창업·수성이 아닌 경장기로 진단했다.

나머지 3가지 생각은 「지혜의 전당」에서 →

이분의 말

  • 뜻을 세움(立志) — 공부의 첫걸음
  • 이치와 기운의 어울림(理氣之妙) — 둘이면서 하나
  • 진실됨(誠) — 속이지 않는 마음
  • 실질에 힘씀(務實) — 말보다 하는 일
  • 때에 맞게 고침(更張) — 제도는 시대에 맞게
  • 처음 배우는 이를 깨움(擊蒙)

남기신 글

임금을 가르치고 초학자를 깨우치다 — 율곡의 글

율곡은 글로 나라를 고치려 했습니다. 한쪽으로는 임금에게 올리는 제왕학과 개혁론(『성학집요』·「동호문답」·「만언봉사」)을, 다른 한쪽으로는 처음 배우는 이를 위한 입문서(『격몽요결』)를 남겼습니다. 이 글들은 모두 사후 『율곡전서(栗谷全書)』로 묶여 한국고전종합DB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성학집요

1575 (선조 8)

聖學輯要

홍문관 부제학으로서 제왕의 학을 위해 저술해 선조에게 바친 제왕학서. 『대학』의 명명덕·신민·지어지선 체계를 따라 통설(統說)·수기(修己)·정가(正家)·위정(爲政) 등으로 수기와 치인을 통합했다. 율곡 성리설의 집약.

격몽요결

1577

擊蒙要訣

해주 은병정사에서 초학자를 위해 지은 입문서. 입지·혁구습·지신·독서·사친·상제·제례·거가·접인·처세 10장. 제1장 「입지」의 '먼저 뜻을 세우라'는 가르침이 유명하다. 친필 수고본(국보)이 강릉 오죽헌에 전한다.

동호문답

1569 (선조 2)

東湖問答

34세에 동호독서당에서 사가독서하며 지어 선조에게 올린 11편 문답체 개혁론. 「논군도」·「논무실위수기지요」·「논안민지술」 등에서 무실(務實)로 폐법을 혁신하고 언로를 열 것을 논했다.

만언봉사

1574

萬言封事

1만여 자에 이르는 장문 상소. 시의(時宜)와 실공(實功)을 강조하며 당대의 일곱 가지 폐단과 그 개혁 방안을 조목조목 제시했다. 율곡 경장론의 정수.

기발이승일도설

성혼과의 논변(1572) 전후

氣發理乘一途說

퇴계의 이기호발설에 맞서 '발하는 것은 기뿐이며 이는 거기에 올라탄다'고 논증한 율곡 성리학의 대표 논설. 이기불상리(理氣不相離)에 근거해 호발(互發)을 부정한다.

흔히 율곡을 퇴계의 '주리(主理)'에 맞선 '주기(主氣)' 사상가로 단순 대립시키지만, 이 '주리/주기' 도식의 타당성은 학계 미합의이며 SEP도 율곡을 단순 주기론자로 규정하기 어렵다고 본다.

다시 읽는 한 구절

이분이 직접 쓴 문장입니다. 소리 내어 한 번 읽어 보세요.

理無形而氣有形, 故理通而氣局.
이(理)는 형체가 없고 기(氣)는 형체가 있다. 그러므로 이는 두루 통하고, 기는 한정된다.
— 「『성학집요』 (이통기국)
發之者氣也, 所以發者理也. 非氣則不能發, 非理則無所發.
발하는 것은 기요, 발하게 하는 까닭은 이다. 기가 아니면 발할 수 없고, 이가 아니면 발할 바가 없다.
— 「『기발이승일도설』

원전 구절 더 읽기 →

오늘 우리에게

AI 시대 — 무실(務實)과 경장(更張)을 다시 읽는다

율곡의 사상은 '원리와 현실의 거리'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를 묻습니다. 보편 원리(理)는 두루 통하지만 현실(氣)은 저마다 한정되어 있다는 이통기국, 때에 맞게 낡은 틀을 고치자는 무실·경장은 빠르게 변하는 기술 사회에 곧바로 말을 겁니다. 다만 'AI 시대 유효성'을 직접 다룬 학술 평가는 아직 빈약하므로, 아래 연결은 일반적 현대적 의의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직합니다.

이통기국 (理通氣局)

보편 원칙 대 현장 맥락 — AI 윤리 원칙의 현지 적용

'인간 존엄' 같은 원리(理)는 어디서나 통하지만, 그것을 적용할 현실(氣)은 나라·상황마다 다르다 — 보편 원칙과 구체적 맥락을 함께 보는 눈.

무실 (務實)

보여주기식 정책·전시성 기술 도입

허울이 아니라 실제 효과(實功)에 힘쓰라 — AI 도입이 진짜 문제를 푸는지 묻는 '실속의 잣대'.

경장 (更張)

기술 변화에 뒤처진 낡은 제도·법

거문고 줄을 고쳐 매듯, 시대에 맞지 않게 된 규칙은 과감히 다시 짠다 — 기술 사회의 제도 개혁 정신.

AI 시대와 이어지는 자리

AI가 답을 대신 써 주는 시대에, 율곡의 '뜻을 세움(立志)'은 "그래서 나는 왜 배우는가"를 먼저 묻게 한다.

가르치는 방식

이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말하듯 차근차근 짚어 줍니다. "그래서 오늘 무엇을 하겠소?"로 이야기를 맺습니다. 어렵게 말하지 않는 것이 이분의 원칙입니다.

우리 반에서

율곡 이이 선생님을 만나는 방법

수업이 아니라 만남입니다. 한 번의 만남은 늘 같은 순서로 닫힙니다 — 오늘의 질문 → 현자와의 대화 → 고전 한 구절 다시 읽기 → 오늘 해볼 한 가지.

  • 뜻을 세우는 다섯 걸음

    혼자 만나기5번의 만남

    뜻 세우기 · 버릇 고치기 · 하루 살피기 · 사람 사귀기 · 나의 다짐을 차례로 다룹니다.

    그분과 나, 둘이서

  • 말과 실질 — 함께 이야기

    여럿이 함께

    다산·공자 선생님과 함께 '말만 앞서는 나'를 이야기합니다.

    여러 분과 한자리에

더 깊이

율곡 이이 선생님의
「지혜의 전당」이 열려 있습니다.

일곱 개의 방을 차례로 걸으며 한 사람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봅니다. 마지막 방에서 그분이 당신에게 묻습니다 —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1. 오늘 모실 분
  2. 살던 시대
  3. 살아오신 길
  4. 핵심 생각
  5. 남기신 글
  6. 오늘 우리에게
  7. 이제 당신 차례
「지혜의 전당」 들어가기 →

대화를 시작하려면

율곡 이이 선생님과 이야기하려면
우리 반에 들어오세요.

여기는 강의실이 아니라 만나는 자리입니다. 우리 반에 들어오면 다섯 번의 만남, 여러 분과 함께하는 이야기, 매일의 마음 일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소개 · 남기신 글 · 「지혜의 전당」은 지금도 그냥 둘러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