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자와 위인들
우리나라의 현자와 위인지혜의 전당 있음

백범 김구

金九

白凡 金九 · Kim Gu

🕰️ 1876 ~ 1949🏞️ 조선, 황해도 해주 · 대한민국임시정부🎒 중·고학년 눈높이

가장 부강한 나라가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원했다.

총칼보다 '문화의 힘'을 원한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 선생님의 첫 인사

어서 오시오. 나는 김구요, 호는 백범(白凡)이라 하오.

황해도 시골 상민의 아들로 태어나 감옥도 여러 번 살았고, 스물일곱 해를 남의 나라 땅에서 떠돌았소. 그런 내가 끝내 가장 갖고 싶었던 것은 총도 돈도 아니었소. 「높은 문화의 힘」이었소. 남을 이기는 힘 말고, 남을 행복하게 하는 힘 말이오.

백범이라는 이름은 가장 낮은 자리의 사람들까지 나만한 마음을 갖는 나라를 바라며 지은 것이오. 그러니 그대가 무슨 이야기를 들고 왔든 나는 낮잡아 보지 않소.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먼저 알아 두면 좋아요

이분은 이런 고민에 말 걸어 줍니다

거창한 질문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아래 문장 중 하나를 그대로 들고 가도 대화는 시작됩니다.

  •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였으면 좋겠냐고 물으면 막막해요.
  • '문화의 힘'이 정말 돈이나 무기보다 셀 수 있나요?
  • 생각이 다른 친구와는 어떻게 지내야 하나요?
  • 실패한 이야기를 남에게 말해도 될까요?
  • 낮은 자리에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어떤 분인가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 · 완전한 자주독립과 '문화국가'를 꿈꾼 겨레의 스승

오늘 저자와의 대화에 백범 김구 선생을 모셨습니다. 반갑게 맞아 주세요. 그는 황해도 시골의 상놈으로 태어나, 동학의 접주로, 국모의 원수를 갚으려던 청년으로, 감옥의 죄수로, 마침내 27년을 이역에서 떠돌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켜낸 주석이 된 분입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물으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우리나라의 완전한 자주독립"이라 답하면서도, 정작 가장 갖고 싶은 것은 총칼이 아니라 '높은 문화의 힘'이라 말한 사람이지요. 일곱 개의 방을 따라 그가 살아낸 격동의 시대, 치하포에서 상해로 이어진 험난한 생애, '문화국가'와 '사랑의 문화'라는 꿈, 그리고 분단을 막으려 삼팔선을 넘던 마지막 걸음까지 차근차근 둘러보며 그를 알아가 보세요.

살던 시대

나라가 무너지고, 빼앗기고, 되찾았으나 둘로 갈라지던 73년

조선 말기 → 일제강점기 → 해방 · 1876–1949 (개항·국권피탈·독립운동·분단)

태어남 (황해도 해주 텃골) · 1876
감옥에서 이름을 '김구', 호를 '백범'으로 바꿈 · 1911
상해로 망명 · 임시정부 경무국장 · 1919
한인애국단을 조직 · 1931
임시정부 주석 취임 · 한국광복군 창설 · 1940
27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옴 · 1945
세상을 떠남 · 1949

김구의 생애(1876–1949)는 한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역사의 진폭이 가장 컸던 시기와 정확히 겹칩니다. 그가 태어난 1876년은 조선이 강화도조약으로 문을 연 바로 그 해였습니다. 어린 시절 동학농민운동(1894)청일전쟁을 겪었고, 청년기에 을미사변(1895, 명성황후 시해)을사조약(1905), 경술국치(1910, 한일병합)로 나라가 통째로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나라를 잃은 뒤에는 애국계몽운동의병, 3·1운동(1919)을 거쳐 국외 독립운동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김구는 상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문지기 같은 경무국장에서 시작해 마침내 주석에 오릅니다. 그의 후반생은 임시정부의 27년 유랑(상해→항저우→전장→창사→광저우→류저우→치장→충칭)과 겹칩니다.

같은 시대를 살던 사람들

  • 안중근 (安重根, 1879–1910)청계동 시절 은사 안태훈 진사의 아들 — 훗날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의사
  • 안창호 (安昌浩, 도산, 1878–1938)신민회·임시정부의 동지 — 실력양성·인격수양 노선의 지도자
  • 이승만 (李承晩, 1875–1965)임시정부 초대 대통령·훗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 노선을 두고 협력과 갈등을 오간 사이
  • 이동녕 (李東寧, 석오, 1869–1940)임시정부를 함께 이끈 평생 동지·정신적 큰형 — 김구가 가장 의지한 어른
  • 윤봉길·이봉창 (1908–1932 / 1900–1932)한인애국단의 두 의사 — 1932년 도쿄와 상하이 의거로 임시정부를 되살림
  • 김규식 (金奎植, 1881–1950)1948년 남북협상에 함께 나선 통일운동의 동반자

살아오신 길

황해도 상놈의 아들에서 임시정부 주석으로 — 일곱 번 이름을 바꾼 삶

  1. 1876

    0

    출생 — 황해도 해주 텃골

    안동 김씨 상민 집안의 외아들. 아명은 창암(昌巖).

  2. 1893

    17

    동학 입도 · 팔봉접주

    이듬해 동학농민운동에 참여, 해주성 공격에 나섬.

  3. 1896

    20

    치하포 의거 · 인천감옥 사형선고

    국모보수로 일본인 쓰치다를 처단. 고종 특사로 사형집행 정지.

  4. 1898

    22

    탈옥 · 마곡사 출가(승려 원종)

    삼남 방랑 끝에 출가했다 환속. 이후 기독교에 입교해 교육운동에 투신.

  5. 1911

    35

    안악·105인 사건 재투옥

    옥중에서 이름을 金龜→金九로, 호를 백범(白凡)으로 바꿈.

  6. 1919

    43

    상해 망명 ·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

    3·1운동 직후 망명. 5년간 밀정을 막아냄.

  7. 1931

    55

    한인애국단 조직

    이듬해 이봉창(1.8)·윤봉길(4.29) 의거로 임시정부의 위상을 되살림.

  8. 1940

    64

    임시정부 주석 취임 · 한국광복군 창설

    충칭에서 단일지도체제 확립, 국내진공작전을 준비.

  9. 1945

    69

    환국 — 27년 만의 귀국

    11월 23일, 개인 자격으로 귀국. 그러나 조국은 삼팔선으로 분단됨.

  10. 1948

    72

    남북협상 · 통일정부 운동

    단독정부 반대. 평양을 방문했으나 통일의 꿈은 좌절.

  11. 1949

    73

    서거 — 경교장에서 피살

    6월 26일 안두희의 흉탄에 쓰러짐. 국민장으로 효창원에 안장.

사건 ①: 1896년 치하포 — 사형장에서 얻은 결심

스물의 청년 김구는 국모를 시해한 원수를 갚겠다는 마음으로 일본인 쓰치다를 처단하고 스스로 이름과 주소를 밝힌 뒤 붙잡혔습니다. 인천감옥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죽음을 앞둔 그는 『대학(大學)』을 거듭 읽으며 흔들리지 않았고, 옥중에서 다른 죄수들에게 글을 가르쳤습니다. 이 죽음의 문턱 경험이 '못난 사람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다'는 평생의 신념으로 굳어집니다.

사건 ②: 1932년 이봉창·윤봉길 — 꺼져가던 임시정부를 되살리다

1930년대 초 임시정부는 사람도 돈도 떨어져 존폐의 기로에 있었습니다. 김구는 한인애국단을 만들어, 이봉창으로 하여금 도쿄에서 일왕을 향해 폭탄을 던지게 하고(1.8), 윤봉길로 하여금 상하이 훙커우공원 의거를 결행하게 했습니다(4.29). 이 두 의거로 세계가 한국 독립운동을 다시 주목했고, 중국 국민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내 임시정부가 되살아납니다. 일제는 그의 목에 60만원의 현상금을 걸었습니다.

사건 ③: 1948년 남북협상 — 분단을 막으려 삼팔선을 넘다

해방된 조국이 둘로 갈라지려 하자, 이미 일흔이 넘은 김구는 "삼팔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단독정부는 세우지 않겠다"며 반대를 무릅쓰고 평양으로 향했습니다. 통일정부를 세우려던 이 마지막 정치적 승부는 끝내 실패했지만, 눈앞의 이익보다 겨레의 하나됨을 앞세운 그의 선택은 오늘까지 통일 논의의 원점으로 기억됩니다.

핵심 생각

완전한 자주독립 · 문화의 힘 · 사상과 언론의 자유 · 홍익인간

어려운 한자말은 뜻을 먼저 적고 한자는 괄호에 넣었습니다. 뜻만 알아도 충분합니다.

김구의 생각은 추상적 철학 체계가 아니라 '나라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라는 절박한 물음에서 나왔습니다. 그 답의 첫 자리에는 완전한 자주독립 — 남에게 절제도 의뢰도 받지 않는 나라 — 이 있습니다. 그러나 독립은 목적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그가 정작 원한 것은 부강한 나라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곧 '높은 문화의 힘'으로 남을 행복하게 하는 문화국가였습니다. 그 나라를 지탱하는 정치 원리는 자유 — 특히 어떤 계급이나 학설의 독재도 배격하고 사상·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였습니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인의(仁義)와 자비와 사랑, 곧 단군의 홍익인간(弘益人間) 이상이 흐릅니다. 그는 공자·석가·예수를 함께 스승으로 삼되 어느 하나를 민족 위에 두지 않았고, 여러 나무가 어울려 숲을 이루듯 다양한 사상이 공존하는 나라를 꿈꿨습니다.

완전한 자주독립

完全 自主獨立

남의 절제도, 남에 대한 의뢰도 없는 나라. "네 소원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독립이라 답한, 그의 70 평생을 관통한 단 하나의 소원입니다. 어느 강대국의 연방에 편입되기를 바라는 것은 '제정신을 잃은' 일이라 단호히 배격했습니다.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 『백범일지』「나의 소원」

문화의 힘 (문화국가)

文化의 힘

무력이나 경제력이 아니라,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도 행복을 주는 힘. 부력은 생활을 풍족히 할 만큼, 강력은 침략을 막을 만큼이면 족하되,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은 오직 높은 문화의 힘이라 했습니다. 오늘날의 '소프트파워'를 반세기 앞서 말한 통찰입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 『백범일지』「내가 원하는 우리 나라」

자유 · 독재 배격

自由

그의 정치 이념을 한마디로 하면 '자유'입니다. 개인의 방종이 아니라, 나라의 법이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나오는 상태를 뜻합니다. 한 개인의 독재도, 한 계급·한 학설의 계급독재도 배격했으며, 조선을 쇠망케 한 원인으로 주자학 일색의 '철학을 기초로 한 계급독재'를 지목했습니다.

오직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만 진보가 있는 것이다 — 『백범일지』「나의 소원·정치 이념」

사상·신앙의 공존

思想·信仰의 自由

산에 한 가지 나무만 나지 않고 들에 한 가지 꽃만 피지 않듯, 유교·불교·기독교가 자유로이 어울리고 인류의 위대한 사상이 다 함께 꽃피는 나라. 그는 공자·석가·예수를 성인으로 숭배하되, 그 어느 것도 민족보다 앞세우지 않는 다종교·다사상의 공존을 이상으로 삼았습니다.

나머지 2가지 생각은 「지혜의 전당」에서 →

이분의 말

  • 완전한 자주독립(完全 自主獨立) — 남에게 눌리지도 기대지도 않는 나라
  • 문화의 힘(文化) — 남을 행복하게 하는 힘
  • 꽃을 심는 자유(自由) — 꺾는 자유가 아니라 심는 자유
  • 생각과 믿음의 숲(思想·信仰의 自由) — 한 가지 나무만 나는 산은 없다
  • 널리 사람을 이롭게(弘益人間) — 사랑과 평화의 문화
  • 백정과 보통 사람까지(白凡) — 누구나 나만한 마음을 갖는 나라

남기신 글

감옥과 망명지에서 두 아들에게 남긴 유서 — 『백범일지』

김구는 학자가 아니라 실천가였습니다. 그가 남긴 유일한 저술 『백범일지(白凡逸志)』는 애초에 출판을 위한 글이 아니라, 임시정부 주석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신이 본국의 두 어린 아들(인·신)에게 남긴 유서였습니다. 상권은 1928–29년 상해에서, 하권은 1941–42년 충칭에서 썼고, 환국 후 1947년 국사원에서 국문으로 출판되면서 겨레 전체를 향한 책이 되었습니다. 그 끝에 붙인 「나의 소원」은 그가 믿는 '민족철학의 대강령'을 압축한 명문으로 널리 읽힙니다.

백범일지

상권 1928–29(상해) · 하권 1941–42(충칭) · 1947 국사원 간행

白凡逸志

출생부터 환국까지의 자서전. 상놈의 설움, 동학·치하포·투옥, 임시정부 27년의 고투를 꾸밈없이 기록했습니다. 자신의 과오와 실패까지 감추지 않아, 영웅담이 아니라 '범인(凡人)의 자서전'을 표방한 것이 특징입니다.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생생한 1차 사료 중 하나로 꼽힙니다.

나의 소원

1947

『백범일지』 부록 (1947)

「민족국가」·「정치이념」·「내가 원하는 우리 나라」 세 편으로 이루어진 짧은 논설. 완전한 자주독립, 자유와 문화국가, 홍익인간의 이상을 밝힌 김구 사상의 결정판입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는 구절이 여기서 나옵니다.

다시 읽는 한 구절

이분이 직접 쓴 문장입니다. 소리 내어 한 번 읽어 보세요.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 「『백범일지』「나의 소원 · 민족국가」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 「『백범일지』「내가 원하는 우리 나라」

원전 구절 더 읽기 →

오늘 우리에게

AI 시대 — '문화의 힘'과 '사상의 숲'을 다시 읽는다

70여 년 전 김구가 그린 '문화국가'의 꿈은, K-컬처가 세계를 움직이고 알고리즘이 사람의 생각을 좌우하는 오늘 오히려 더 또렷하게 다가옵니다. 다만 그의 통찰을 현대의 쟁점과 잇는 일은 '확정된 정답'이 아니라 '생각의 실마리'로 받아들여 주세요.

문화의 힘 (소프트파워)

K-컬처·콘텐츠 산업, AI 창작 시대

무력·경제력보다 '문화의 힘'이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는 통찰은, 문화가 국력이 된 오늘을 반세기 앞서 내다본 것입니다.

사상·언론의 자유

알고리즘 획일화, 에코체임버, 필터버블

'한 가지 나무만 나지 않는 숲'처럼 다양한 생각이 공존해야 진보가 있다는 말은, 추천 알고리즘이 생각을 한쪽으로 몰아가는 시대에 다시 새겨볼 경고입니다.

인의·자비·사랑

온라인 혐오·분열·극단화

인류의 불행이 힘의 부족이 아니라 사랑의 부족에서 온다는 진단은, 익명의 혐오가 넘치는 온라인 공간에 관용을 묻습니다.

AI 시대와 이어지는 자리

무력이나 경제력보다 "문화의 힘"이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는 통찰은, 문화가 곧 국력이 된 오늘을 반세기 앞서 내다본 것이다. 여러 나무가 어울려야 숲이 된다는 말은 알고리즘이 생각을 한쪽으로 몰아가는 시대의 경고이기도 하다.

가르치는 방식

이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려운 말을 쓰지 않습니다. 자기가 겪은 일을 먼저 꺼내 놓고, "나는 이때 이렇게 잘못했소" 하고 실패까지 털어놓은 뒤에 학생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끝에 가서는 늘 "그대가 원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요?" 하고 되묻습니다.

우리 반에서

백범 김구 선생님을 만나는 방법

수업이 아니라 만남입니다. 한 번의 만남은 늘 같은 순서로 닫힙니다 — 오늘의 질문 → 현자와의 대화 → 고전 한 구절 다시 읽기 → 오늘 해볼 한 가지.

  • 내가 원하는 우리 나라 — 다섯 번의 만남

    혼자 만나기5번의 만남

    부강함과 아름다움 · 문화의 힘 · 꽃을 심는 자유 · 생각이 다른 이웃 · 나의 소원을 차례로 이야기합니다.

    그분과 나, 둘이서

  • 낮은 자리에서 쓴 일기

    마음 일기

    잘된 일보다 잘 안 된 일을 적으면, 백범이 자기 실패담으로 답장하고 내일 해볼 한 걸음을 권합니다.

    매일 조금씩 주고받기

  • 문화의 힘 — 함께 이야기

    여럿이 함께

    도산 안창호·만해 한용운 선생님과 한자리에 앉아 "힘이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합니다.

    여러 분과 한자리에

더 깊이

백범 김구 선생님의
「지혜의 전당」이 열려 있습니다.

일곱 개의 방을 차례로 걸으며 한 사람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봅니다. 마지막 방에서 그분이 당신에게 묻습니다 —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1. 오늘 모실 분
  2. 살던 시대
  3. 살아오신 길
  4. 핵심 생각
  5. 남기신 글
  6. 오늘 우리에게
  7. 이제 당신 차례
「지혜의 전당」 들어가기 →

대화를 시작하려면

백범 김구 선생님과 이야기하려면
우리 반에 들어오세요.

여기는 강의실이 아니라 만나는 자리입니다. 우리 반에 들어오면 다섯 번의 만남, 여러 분과 함께하는 이야기, 매일의 마음 일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소개 · 남기신 글 · 「지혜의 전당」은 지금도 그냥 둘러볼 수 있어요.